About: Ryu Ja-g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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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 Jagwang or Ryu Ja-Gwang (korean:류자광, hanja:柳子光, 1439 – June 1512) was a Korean Joseon Dynasty politician, soldier and writer. He was an illegitimate child. His courtesy name was Ubok (우복, 于復), Ucheon (우천, 宇天). His prime political rival was Kim Jong-j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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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 Jagwang or Ryu Ja-Gwang (korean:류자광, hanja:柳子光, 1439 – June 1512) was a Korean Joseon Dynasty politician, soldier and writer. He was an illegitimate child. His courtesy name was Ubok (우복, 于復), Ucheon (우천, 宇天). His prime political rival was Kim Jong-jik. (en)
  • 류자광(柳子光, 1439년 ~ 1512년 6월)은 조선의 초기의 문신이자 무관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우후(于後). 경주부윤을 지낸 류규(柳規)의 얼자로 1439년(세종 21년) 전라도 남원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얼 신분으로 과거를 보지 못하고 갑사가 되어 경복궁 건춘문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 방책을 상소하여 세조에게 발탁, 왕을 호위하는 겸사복이 되었다. 이시애의 난 토벌에 자원하여 종군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병조정랑(정5품)에 올랐다. 1468년 세조의 온양 행차 때 치른 온양별시(溫陽別試) 문과에서 세조가 직접 장원으로 뽑아 급제했고, 이어 병조참지(정3품)에 임명되었다. 29세에 불과한 서얼 출신의 일개 갑사가 단 8개월만에 정3품 당상관에 오르자 대간 등의 반발이 빗발쳤지만, 류자광의 능력을 높이 산 세조의 비호로 임명이 관철되었다. 같은 해, 예종 즉위 후, 평소 시기하던 남이를 역모죄로 무고하여 사형에 이르게 했고, 이 일로 익대공신 1등에 책록되고 무령군에 봉해졌다. 성종에게도 총애를 받아 숭정대부에 올랐고, 도총관, 행지중추부사,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 황해도체찰사,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했으며, 사신으로 두 차례 명에 다녀오기도 했다. 연산군 대에도 겸도총부도총관, 숭록대부 무령군에 제수되며 권세를 누렸다. 자신을 무시하던 김종직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1498년(연산군 4년) 성종실록 편찬 과정에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를 비난한 것이라는 상소를 올려 무오사화를 촉발했다. 1506년 박원종의 권유로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추대했고, 이 일로 정국공신 1등에 무령부원군에 봉해졌다. 대간과 사헌부, 홍문관의 지속적인 탄핵을 받다가 1507년(중종 2년)에 훈작 삭탈과 함께 유배되었고, 1512년 6월 경상도 유배지에서 74세 나이로 병사했다. (ko)
  • 柳子光(朝鮮語:유자광,1439年?-1512年6月)是朝鲜王朝早期的武臣、军人和政治人物。字于復(우복)。封号武灵君,武灵府院君(무령부원군)。戊午士禍、甲子士禍主要人物和中宗反正的靖国功臣,全羅南道出身人物。 (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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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 Jagwang or Ryu Ja-Gwang (korean:류자광, hanja:柳子光, 1439 – June 1512) was a Korean Joseon Dynasty politician, soldier and writer. He was an illegitimate child. His courtesy name was Ubok (우복, 于復), Ucheon (우천, 宇天). His prime political rival was Kim Jong-jik. (en)
  • 柳子光(朝鮮語:유자광,1439年?-1512年6月)是朝鲜王朝早期的武臣、军人和政治人物。字于復(우복)。封号武灵君,武灵府院君(무령부원군)。戊午士禍、甲子士禍主要人物和中宗反正的靖国功臣,全羅南道出身人物。 (zh)
  • 류자광(柳子光, 1439년 ~ 1512년 6월)은 조선의 초기의 문신이자 무관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우후(于後). 경주부윤을 지낸 류규(柳規)의 얼자로 1439년(세종 21년) 전라도 남원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얼 신분으로 과거를 보지 못하고 갑사가 되어 경복궁 건춘문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 방책을 상소하여 세조에게 발탁, 왕을 호위하는 겸사복이 되었다. 이시애의 난 토벌에 자원하여 종군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병조정랑(정5품)에 올랐다. 1468년 세조의 온양 행차 때 치른 온양별시(溫陽別試) 문과에서 세조가 직접 장원으로 뽑아 급제했고, 이어 병조참지(정3품)에 임명되었다. 29세에 불과한 서얼 출신의 일개 갑사가 단 8개월만에 정3품 당상관에 오르자 대간 등의 반발이 빗발쳤지만, 류자광의 능력을 높이 산 세조의 비호로 임명이 관철되었다. 대간과 사헌부, 홍문관의 지속적인 탄핵을 받다가 1507년(중종 2년)에 훈작 삭탈과 함께 유배되었고, 1512년 6월 경상도 유배지에서 74세 나이로 병사했다.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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